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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제 목 성령 충만한 성도들에게서 나타나는 분노 (행7:51-53)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11-15 18:37:21 조회 739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로 하루에도 몇 번씩 화를 내며 살아갑니다. 아무리 인자한 것 같은 사람이라도 화를 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성도들도 화를 냅니다. 때로 너무 화가 나서 자기의 신분을 망각하고 화를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분노는 죄
  그런데 성경은 이러한 화 즉 분노를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5:22절에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우리의 눈을 의심케 하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분노하지 말 것을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도 때때로 분노하셨다는 것입니다. 마21:12-13, 눅19:45-46, 요2:13-17절에 보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에 성전을 둘러보시고, 성전 안에 있는 장사꾼들을 향해 채찍을 휘두르시며 꾸짖어 내쫓았습니다. 그리고 격렬하게 화를 내시며 분노하셨습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마21: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막3:5절에 보면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당혹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분노는 분명히 죄라고 했는데, 예수님께서도 노하셨다고 하면,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지금 분명히 죄를 짓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분노에도 죄가 되는 분노가 있고, 죄가 되지 않는 분노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예수님의 분노는 당시 종교인들인 제사장들이고 바리새인들이고 서기관들에게 행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들에게 분노한 것은 이들에게서 형식주의, 위선, 부패, 유대교의 타락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전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는 제사장들과 종교인들을 향해서 분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노하셨다는 마가복음 3장의 말씀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모함하려는 장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함정을 만들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계략을 단번에 알아차리셨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불쌍한 병자가 고침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행위를 보고, 율법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분노는 우리들이 흔히 죄로 범하는 분노와는 다른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들의 분노는 나의 기질, 나의 자존심, 지위, 재산, 혹은 명예가 손상되었다고 느끼기에 이런 성질들이 튀어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대부분의 분노는 악의에 차 있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분노는 우리와 같지 아니합니다. 오로지 예수님께서는 모든 악에 대항하여 분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무리들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이러한 분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나타나야 하는 분노인 것입니다.

스데반의 분노
  그런데 우리는 오늘 스데반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분노를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본문에 보면, 스데반이 분노하고 있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의 잘못된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끊임없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말씀하시는 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자기들의 욕심대로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온 것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까지 죽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가장 잘 지킨다고 생각하는 그들이 그들의 이기심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를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산헤드린 공회에서 왜 자기의 무죄를 변론하지 않고, 자기를 옹호하지 않으며, 자기의 생명을 살려달라고 호소하지 않고, 이렇게 저들의 신앙의 잘못됨을 지적하며 분노하고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성령 충만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함이 그 속에 있기에 성령의 눈으로 그들의 신앙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일으켜 주시는 마음으로 그들의 행위들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그 모습에 자기의 육신이 사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함을 안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목숨이 위험에 처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저들을 향하여 분노하며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결단하기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삶은 무조건 사랑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무조건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무조건 용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삶은 잘못된 신앙을 바로 잡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가게 하지 않고 거룩한 분노를 가지게 합니다. 지적하여 바르게 행하게 합니다. 그것이 자기가 고통 가운데 빠진다고 할지라도 타협하지 않고 바른 말을 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 분노는 감정으로 하는 분노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을 올무에 빠트리고자 하는 분노가 아니라 그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분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러한 분노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이러한 분노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스데반처럼 이러한 분노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분노를 가질 때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역사를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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