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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성령 충만한 성도는 기도도 다르다 (행7:54-60)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11-29 14:34:09 조회 820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모두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모두 기도는 하지만, 그 기도의 수준은 똑같지 않습니다. 어떤 성도의 기도는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어떠하신지를 생각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달라고만 합니다. 그것이 후에 자기에게 유익한지 어떤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지금 필요하니까 당장 달라고 합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는 자기 입장과 감정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생각하고, 이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어떻게 영광 돌릴 수 있는지를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이런 면에서 성령 충만한 성도의 기도는 그렇지 못한 성도의 기도와 많은 수준의 차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성령 충만한 성도에게서 나타나는 기도의 모습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보면, 성령 충만한 성도는 기도하는 것도 그렇지 않은 사람과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스데반이 유대인들에 의해 돌에 맞아 죽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독교 최초의 순교입니다. 그런데도 스데반은 이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전혀 원망이나 불평하지 않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더 좋은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봄
  그러면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도 스데반과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첫째, 이 세상의 삶이 끝이 아니라 더 좋은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55절의 말씀은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그러자 거기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 계셨습니다. 이 세상과 다른 하나님의 나라가 보였습니다. 성령 충만했던 스데반은 이 사실을 깨닫고 그 와중에서도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스데반이 하늘을 우러러 보지 아니하고, 자기를 향하여 이를 가는 사람들, 자기를 심판해서 사형시키려고 하는 공회의 재판관들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더욱더 엄청난 절망감, 공포, 두려움, 지금까지 신앙생활 한 것의 후회 등이 그에게 밀려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기도는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신앙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성도들은 이렇게 아무리 어려운 상황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하늘을 봅니다. 하늘을 보고, 하나님의 나라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보며, 그 상황에서도 힘과 용기,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정을 믿음
  두 번째로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도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기도하는 이유는 “내 믿음의 모습을 인정해 주시는 분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7:56절은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왜 주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 계셨겠습니까? 이것은 하늘에서 스데반이 행한 모든 일을 보시며, 스데반의 믿음의 모습에 대해서 서서 인정해 주고 계시는 것을 말씀합니다. “내가 네 편이다. 내가 너를 응원하고 있고,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다. 끝까지 잘 싸워라”라고 용기를 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예수님께서 이렇게 인정해 주고 계시는 것을 보는데, 스데반이 실망과 좌절과 후회의 모습을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더 용기를 얻고, 확신을 얻고, 더 뜨겁게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우지 않도록 기도 한다
  이렇게 성령 충만하면, 엄청난 고통 가운데서도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내용도 성령 충만하지 않은 사람들과 다릅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는 그 상황 가운데서도 연약한 육체의 모습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울까 염려합니다. 7:59절에 보면, 스데반은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스데반은 살려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원수들을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원수 갚겠다고 부르짖지도 않았습니다. 이 기도는 단순히 “이제 내가 죽습니다”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며, 그의 연약한 육체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우지 않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기도의 모습이며, 기도의 내용입니다.

고통을 주었던 사람들을 위해서 용서의 기도를 한다
  뿐만 아니라 성령 충만한 성도는 고통을 주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용서의 기도를 할 수 있게 됩니다. 7:60절에 보면 스데반은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어떻게 스데반에게서 이러한 용서의 기도가 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내 생각과 입장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상대방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들의 무지를 알게 되어 저들을 불쌍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내가 고통받는 것보다도 먼저 이것에 대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어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결단하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기도는 어떠한 기도입니까? 이제 성령 충만하여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기도하기를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있고, 예수님이 여러분들을 인정하고 계십니다. 이제 스데반처럼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지 않게 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어려움 속에 빠트리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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